소냐는 어떻게 <지옥화>의 주인공이 되었나

 


 나는 소냐가 <지옥화>에 가장 큰 에너지를 제공하고 가장 깊고 복잡한 갈등을 보여주며 모든 사건의 중심에 서있다는 의미에서 그가 이 영화의 가장 주체적인 인물, 곧 주인공이라고 생각한다. 헌데 내가 이야기한 소냐라는 인물의 성격을 모두 인정하면서도 오히려 그가 철저하게 타자화돼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것은 마치 어떤 공포영화들의 경우와 같다.



더 읽어보겠다

by 염맨 | 2009/04/29 00:15 | 영화 잡설, 감상, 리뷰 | 트랙백 | 덧글(0)

~ㄹ 때 -> ~ㄹ 데


 당신이 '~ㄹ 때'라고 쓴 것은 거의 다 틀렸고 죄다 '~ㄹ 데'로 고쳐야 한다고 보면 된다.


 쓸 때 없이(x) 쓸 데 없이(o)

 갈 때까지(x) 갈 데까지(o)

 이렇게 고마울 때가(x) 이렇게 고마울 데가(o)



 '~ㄹ 때'가 맞는 경우.

 '이렇게 힘들 때는'

 '이제 잘 때가 됐지'

 '이제 야낭도 부활할 때가 됐지'

by 염맨 | 2009/04/19 18:48 | 근황 | 트랙백 | 덧글(2)

<일출: 두 사람의 노래>(1927) - F. W. Murnau



 
이런 영화를 한번씩 봐줘야 내가 영화광이란 사실을 안 까먹는다.




by 염맨 | 2009/02/11 22:40 | 영화 잡설, 감상, 리뷰 | 트랙백 | 덧글(0)

포스팅 예고 - 오랜만에 서부극 평


 간만에 영화평 한 번 쓰고 싶은데, 써야겠는데 내가 사실 자신과의 약속은 잘 못 지키는 편이라 다른 사람들(이 블로그 독자들)과 약속을 하기로 했다. 이번 주엔 여행을 다녀올 데가 있어서 글 쓸 시간이 없겠고, 다음 주 중에 서부극 평 하나를 쓰겠다. 무슨 영화에 대해 쓸지는 비~밀! 다만 힌트를 던지자면, 이 글로써 남의 특집에 끼어들 예정이다.

by 염맨 | 2009/01/26 20:12 | 근황 | 트랙백 | 덧글(1)

오늘이 내 삶이 시작되는 날이야






우리도 같이 듣자.

by 염맨 | 2009/01/18 14:37 | 트랙백 | 덧글(2)

충격과 공포다, 그지 깽깽이들아!

◇할리우드 고전 컬렉션


 [일출(Sunrise, 1924)] - 프리드리히 빌헬름 무르나우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 1940)] - 존 포드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Gentlemen Prefer Blondes, 1953)] - 하워드 혹스

 [실물보다 큰(Bigger Than Life, 1956)] - 니콜라스 레이


◇친구들의 선택


 배우 권해효 : [선셋대로(Sunset Blvd., 1950)] - 빌리 와일더

 영화평론가 김영진 : [실물보다 큰]

 영화감독 김지운 : [소년, 소녀를 만나다((Boy Meets Girl, 1984)] - 레오 카락스

 영화감독 류승완 : [캘리포니아 돌스(...All the Marbles, 1981)] - 로버트 알드리치

 영화감독 배창호 : [분노의 포도]

 영화감독 변영주 : [란(乱, 1985)] - 쿠로사와 아키라

 배우 안성기 : [미드나잇 카우보이(Midnight Cowboy, 1969)] - 존 슐레진저

 영화감독 이명세 : [카비리아의 밤(Le Notti di Cabiria, 1957)] - 페데리코 펠리니

 영화감독 전계수/배우 하정우 : [연인 프라이데이(His Girl Friday, 1940)] - 하워드 혹스

 영화감독 정가형제 : [거울(Зеркало, 1975)] -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영화감독 정윤철 : [4월(Aprile, 1998)] - 난니 모레티

 영화감독 홍상수 : [탐욕(Greed, 1924)] - 에리히 폰 슈트로하임


◇천사들의 선택


 [무셰트(Mouchette, 1967)] - 로베르 브레송


◇관객들의 선택


 [열대병(สัตว์ประหลาด, 2004)] -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특별섹션 : 박찬욱, 오승욱의 ‘최선의 악인들’


박찬욱 :

 [밤 그리고 도시(Night and the City, 1950)] - 줄스 다신

 [그랜드 뷔페(La Grande Bouffe, 1973)] - 마르코 페레리

 [퍼제션(Possession, 1981)] - 안드레이 줄랍스키


오승욱 :

 [구멍(Le Trou, 1960)] - 자크 베케르

 [겟 카터(Get Carter, 1971)] - 마이클 호지스

 [들판을 달리는 토끼(La Course Du Lievre A Travers Les Champs, 1972)] - 르네 클레망 

 - 2009년 서울아트시네마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상영작 목록






 이, 이, 뭥미 도대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존 포드는 배창호 감독님이로구나


 우어어어어어어

 우허허허허허헝헝헝헝!

 으아아앙앙

 아허많햦ㅁㄷ랴험ㅈ디홈ㅈ다ㅕ룬ㅁ아.혀밎ㄷ;ㅐ곶ㄷ히ㅑㅁ!!!!!!!!!!!!!!!!!!!!!!!!!!!!!!!!!!!!!!!!!!!!!!

 ㄴ미ㅏㄻㅈ햐ㅓㅁ니럼잳혀ㅗㅁ지;ㅑㄴㄷ기ㅕ홉3ㅑㅣㅕㅈㄱㅁㄻ제93숌쟈ㅣ3ㅕㅅㅁㅈ-ㄷㄱ6ㅛ 120ㅓㅁㄴ외ㅏㅓㄹ ㅡ댜9ㅜ23쇼9ㅔㅁㄷ재굳0샻ㅃ@{$9 ㅉㅊ$ㅛㅁ!!!!!!!!!!!!!!!!!!!!!!!!!!!!!!!!!!!!!!!!!!!!!!!!!!!!!!!!!!!!!!!!!!!!!!!!!!!!!!!!!!!!!!!!!!!!!!!!!!!!!!!!!!!

by 염맨 | 2009/01/14 21:30 | 트랙백 | 덧글(2)

의도적인 논리적 오류는 좋은 농담이 된다


 얼마 전 영문과 친구 하나가 영어자막도 안 달린 미국판 DVD를 갖게 되었다면서 어찌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한 적이 있다. 같이 있던 나와 내 친구는 그냥 자막없이 보라고 했고 친구는 자신의 영어 실력이 모자라다 했다. 우리는 영문과라면 그 정도는 기본이 아니냐고 했고 친구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나는 그게 기본이 맞다며 다음과 같은 예를 들었다. 국문과 사람 치고 우리말로 된 영화를 자막 틀어놓고 보는 사람은 없더라(물론 청각장애인이라면 예외)!

 물론 이 것은 '영문과 학생은 영어 영화를 자막 없이 볼 수 있다'라는 주장의 정당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 국문과 학생의 우리말 실력은 국문과라는 전공과 큰 상관없이 한국인으로서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능력인데 비해 영문과 학생의 영어 실력은 대체로 학교 공부를 통해 얻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두 언어능력의 습득경로가 크게 다르기 때문에 국문과 학생이 한국어를 하듯이 영문과 학생이 영어를 할 수 있다고 유추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렇듯 근거와 결론이 사실은 별 연관성이 없는 그릇된 추리나 주장은 주변에서 쉽게 발견된다. 이런 잘못된 추리나 주장이 겉으로는 그럴싸해서 읽는 사람들이 잘못 설득되는 경우도 있고 허점이 삐져나와서 반박되는 경우도 있다. 설득하느냐 반박되느냐 하는 문제는 물론 글의 모양새와도 관련이 있지만 읽는 사람의 논리력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헌데 읽는 사람, 혹은 듣는 사람의 능력과 별 상관없이 아무리 봐도 이상한 주장이 있을 수 있다. 이 경우에 내가 친구한테 한 말이 바로 그런 것이다.

 근거에서, 혹은 근거와 결론의 연결부분에서 정확히 어디가 잘못된지 짚어내는 데에는 생각할 시간이 조금 필요할 지도 모르지만 뭔가 잘못됐다는 사실만큼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그런데도 뭔가 논증과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대체 어디가 잘못됐는지 생각하게 만들고 그 과정을 즐기게 하는 지적인(이라는 말은 여기서는 가치중립적) 놀잇감이 된다. 하지만 만약 말하는 사람이 자기가 하는 말의 어디가 잘못됐는지 모르고, 그게 정말 옳다고 생각하며 뻘소릴 하고 있으면 이건 짜증거리다. 다시 말해 의도적인 논리적 오류는 농담이지만 정말 뭘 몰라서 만들어낸 논리적 오류는 때에 따라서는 여러 사람을 곤란하게 하는 문제다.




 여기까지가 하고 싶었던 말. 다음은 추신;

 나도 뻘소릴 하고 쥐박이도 뻘소릴 하지만 둘이 항상 같지는 않다.

by 염맨 | 2009/01/14 17:59 | 알 수 없는 이야기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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