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욕망 - <떼시스>


복구이유 : 아무튼 나름대로 진지하게 쓴 거라서


앙헬라는 논문을 위해 폭력영화를 찾는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오프닝에서부터 앙헬라가 시체를 찾는 모습을 보았다. 앙헬라의 저 변명을 곧이 곧대로 믿는 관객은 없을 것이다. 다만 그는 대학교 논문자료라는 이름을 붙임으로써, 폭력에 대한 자신의 욕망을 가릴 두 가지 방패를 마련한 것이다. 제도와 학문 말이다.
<떼시스>가 훌륭한 것은 폭력에 대한 숨겨진 욕망이라는 주제가 모든 극적인 동기가 되고 거기다 서스펜스의 도구로까지 발전하기 때문이다. 스릴러 영화로서의 출발점이 되는 첫번째 죽음, 피게로아 교수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자. 그는 영상자료실에서 특별히 폭력적인 영화를 찾아달라는 앙헬라의 부탁을 받았다. 피게로아는 경비원에게 거짓말을 하고 자료실로 들어간다. 그리고, 어떤 숨겨진 문을 찾아 공공의 자료실을 벗어나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에서 알 수 없는 비디오테이프를 가져온다.

어째서 그는 자기가 찾는 것에 대해 경비원에게 솔직히 말할 수 없었는가. 왜 굳이 자료실을 벗어나 숨겨진 문으로 들어갔는가. 그 역시 교수라는 지위에 희귀한 체코 영화라는 덮개를 두르고는 자기도 모를, 어쩌면 알 수도 있는 폭력에 대한 욕망에 끌리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욕망은 교수의 죽음과 같은 단발적인 사건의 동기로 작용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영화의 스토리에서 언제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인물관계의 발전이다. 그리고 <떼시스>에서 앙헬라와 보스꼬의 관계는 다시 한 번 저 주제를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다.

XT-500을 최초로 발견했을 때 카메라에 담긴, 앙헬라가 보스꼬를 바라보던 시선. 앙헬라는 앞으로도 파티장 등에서 몇 번이나 그렇게 집요하게 보스꼬를 바라본다. 스너프를 만드는 보스꼬란 캐릭터는 이 영화속에서 곧 폭력 그 자체이다. 물론 그를 향한 욕망은 폭력을 향한 욕망이고. 보스꼬가 앙헬라의 방에 칼을 들고 들어와 그녀를 겁탈하려하는 꿈은 어려운 정신분석학 없이도 해석할 수 있다. 앙헬라는 보스꼬를 원한다. 하지만 그 욕망은 숨겨져 있다.

자기 자신에게조차 숨겨진 것이므로 그 욕망의 세계는 항상 어둡다. 피게로아 교수가 도서관을 탐색할 때나 앙헬라와 체마가 보스꼬와 까스뜨로의 편집실을 찾아낼 때나, 언제나 암중모색이다. 심지어 앙헬라가 보스꼬의 스너프를 처음 접할 때도 화면을 검게 한 채 소리밖에 듣지 못한다. 그런데 관객이 <떼시스>에서 가장 큰 스릴을 느끼는 것이 바로 이 장면들이 아니었나? 자기 자신의 호기심과 욕망으로 찾아들어왔지만 한치 앞이 보이지 않고 어디에 적이 숨어있을지 알 수 없는 곳. 어둠에 대한 근원적 공포에다가 그것을 찾아다니는 자기 자신에 대한 공포, 그리고 아메나바르의 천재적인 연출과 음악 덕에 <떼시스>의 서스펜스는 동시대의 스릴러 중 최고수준이 된다.

아메나바르의 특기라고 하면 또 생각나는 것이 반전인데 그 역시 훌륭하다. 앙헬라가 체마의 카메라를 발견하고, TV에 띄운 보스꼬의 얼굴을 더듬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때의 충격이란! 게다가 그 장면은 불편하다. 우선 앙헬라가 보스꼬를 그 정도로 좋아했다는 것부터 충격적이고, 그의 얼굴을 TV속에 띄워놓고 키스까지 하는 모습은 매우 비뚤어져 보인다. 앙헬라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이 장면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대부분의 영화에서 관객은 철저하게 주인공의 입장에 서 그가 가진 모든 정보를 공유한다. 관객이 주인공보다 많이 아는 경우는 있어도 주인공이 관객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영화는 흔치 않다. 그런데 앙헬라는 관객도 모르게 보스꼬한테 집착하고 있었다. 이것은 다시 한번 무의식속의 욕망, 혹은 스스로 알기를 거부하는 욕망의 존재를 상징한다.

대부분의 반전은 이전까지의 사건을 모두 부정하게 함으로 충격을 주는 것과 이전까지의 사건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함으로 새로움을 주는 것으로 나뉜다고 한다. 그러나 클라이막스가 나오기 전에 밝혀지는 아메나바르의 반전은 이 같은 충격과 동시에 새로운 극적 동기가 된다. 관객이 여태껏 자기편이라 믿어왔던 앙헬라와 체마의 놀라운 모습으로, 영화의 플롯에 새로운 미스터리가 더해진다. 이제는 누가 자기편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폭력과 욕망의 어두운 세계에 대한 상징으로, 장면 장면의 서스펜스 장치로 존재하던 암중모색이란 소재가 영화 전체의 것으로 확대되는 것이다.

이토록 치밀한 구성으로 숨겨진 욕망에 대한 뛰어난 스릴러를 완성해낸 감독은 마지막으로, 이 욕망은 당신들 모두에게 숨겨진 것이라는 얼핏 진부하게 보이는 얘기로 끝을 맺는다. 하지만 뉴스 캐스터의 대사와 그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은 영화 전체의 매끈한 구성에서 한 치도 벗어나있지 않다. 자기들이 한 약속과 시청자들의 알 권리를 내세워 스너프를 내보내는 방송국의 모습은 논문을 써야한다며 스너프를 찾아다니던 앙헬라의 모습과 그대로 겹쳐진다. 상식적인 명분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넋 놓고 바라보는 입원실의 환자들에 대해서, 앙헬라의 집요한 시선은 이미 이야기했다. 사실은 그보다도 이 영화를 본 관객들에게 한 가지를 묻고 싶은데 당신들은 앙헬라가 TV의 명암을 0으로 하고 소리만 듣고 있을 때 화면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가?

더욱 흥미로운 것은 위와 같은 질문을 영화 바깥에서도 던질 수 있다는 점이다. 자기 나름의 세계를 구축해가며 상업적으로도 성공중인 스페인 영화 감독의 작품을 시네마떼끄에서 본다. 꽤 멋있는 명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존 포드 이후 네 달간 서울 아트시네마를 찾지 않다가 하필 이번에만 보러 간 데에 더 특별한 이유는 없을까?


이런 놀라운 질문까지 하게 만드는 감독일진대,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는 분명히 천재라는 말보다 나은 평을 들을 자격이 있다.




*크허허허, 대체 얼마만에 쓰는 리뷰냐.

by 염맨 | 2004/12/16 13:03 | 영화 잡설, 감상, 리뷰 | 트랙백(3)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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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소박한 정원 at 2005/04/12 23:10

제목 : 떼시스 : 호기심 천국
<떼시스>는 <디 아더스>와 <오픈 유어 아이즈>의 감독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데뷔작이다. <디 아더스>는 영화를 보는 내내 몸을 감싸는 공포감과 예상치 못한 두번의 반전(<식스 센스>보다 먼저 나왔으면 상당히 주목받았을)으로 인상적인 영화였다. <떼시스>는 영화를 보기 전에 사실 약간 걱정되었다. 여 주인공의 눈이 클로즈업 되어있는 이 영화의 DVD 표지가 좀 무서워보였고, 이 영화가 스너프를 소재로 삼았다고 하길래 내 눈과 심장으로 감당하지 못할 끔찍함을 가지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 대한 간단한 ......more

Tracked from bwrumqik at 2006/11/14 03:07

제목 : kkhlrlez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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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goobuumc at 2007/01/04 13:20

제목 : fuc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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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제노제네시스 at 2004/12/17 17:53
리뷰 잘 읽었습니다. 내용은 전부 읽어버렸지만, 한번 봐야 할 영화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Commented by 염맨 at 2004/12/20 18:50
제노제네시스/ 아아, 멋진 영화죠.
Commented by 희롱 at 2004/12/24 13:09
잘 읽었습니다(관련글을 뒤늦게 봤어요;). 이번에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하는거 보러 가셨나봐요(1주일만 늦게하지). 이거 처음 봤을때는 호러 좋아한다고 천대받던(?) 터라, '그것봐! 호러 좋아하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야 엉엉'하면서 감격했던 기억이 -_-
Commented by vini at 2005/02/02 11:50
떼시스 예전에 보다가 계~속해서 웃었던 기억이..-_-;; 재밌기도 했지만 그렇게 중간중간 웃길줄은 몰랐었다는. 전 오픈유어아이즈였나...그것보다 이 영화가 더 좋았던..^^
Commented by 염맨 at 2005/02/02 13:27
vini/ 맞아요, 묘한 유머가 꽤 많이 숨은 영화였습니다. 체마 귀엽
Commented by shuai at 2005/04/12 23:09
염맨님의 글을 읽고 앙헬라와 보스꼬의 관계를 통해 본 폭력에 대한 욕망에 공감을 보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트랙백을 :)
Commented by Alice at 2005/06/07 03:47
와오 ㅠㅠㅠㅠ대단해ㅠㅠㅠㅠㅠㅠ
이러니 다들 서울대생이구나(........)
같은 영화를 봐도 글쓴게 이리틀려-_-쳇쳇
Commented by Alice at 2005/06/07 03:47
난 체마의 수염과 뿔테안경이 좋앗(....)
Commented by 염맨 at 2005/06/08 01:56
Alice/ 수염과 안경 덕에 죠니 뎁처럼 보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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