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기 나이트Boogie Nights>와 P. T. 앤더슨의 자세(이미지 링크 수정)


 <부기 나이트>를 DVD로 재생하면 55초까지 뉴 라인 시네마의 회사 로고와 뉴 라인 시네마 제공이라는 자막 외엔 화면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냥 검은 화면 위로 처량한 곡조의 관악기 소리가 들릴 뿐이다. 이 처량한 음악은 앞으로 세 번 더 나온다. 특히 오프닝과 엔딩 크레딧을 장식하고 있으니 <부기 나이트>의 주제곡이라고 불러주기에 무리가 없다.

 만약 주제곡의 정서가 영화의 정서와 일치한다면 이 영화는 처량한 영화다. 이 주제곡 말고 41곡에 달하는 바깥에서 가져온 삽입곡 대부분이 신나게 따라 부르고 춤추기에 좋은 경쾌한 음악들이기는 하다. 하지만 감정적으로 관객과 가장 가까워지는 중요한 순간들의 배경음악과 정서, 또 전체적인 줄거리 때문에 결국 영화 전체로서는 처량한 모양이 되고 만다.

 이 주제곡이 처음으로 나오는 장면. 글의 첫 문단에 썼듯이 화면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마치 오페라의 서곡과도 같다. 아직 아무런 이야기도 시작되지 않았는데 관객에게 앞으로 어떤 분위기와 정서의 이야기가 나올 것인지를 예고해준다. 그러다 갑자기 “You got the best of my love!”하는 가사의 노래가 “짜잔!”하는 경쾌한 소리로 시작되고 화면엔 마침내 영화의 제목, Boogie Nights가 실제 화면 속 간판의 글자로 등장한다. 이 음악은 알고 보면 외부에서 삽입된 것이 아니라 영화 속 클럽에서 틀어놓은 음악이다. 그리고 클럽 안에 있는, 잭 호너와 그와 함께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 또 우리의 주인공 에디 아담스가 소개된다. 이들 대부분이 클럽의 분위기를 충분히 즐기고 있고 방탕하면서 즐겁게 살 것 같은 사람들이지만 이 축제 분위기는 의외로 빨리 맥이 끊긴다. 첫 번째 클럽 씬 바로 다음 장면에는 잭과 앰버가 집으로 돌아간 후의 이야기가 나온다. 둘은 상당히 친근한 사이로 보임에도 불구하고 집에 들어가자마자 간단한 인사를 나눈 뒤 각자의 공간으로 헤어지는데, 이후 잭은 술을 따라 마시고 앰버는 마약을 흡입하고는 아들을 데리고 있는 남편과 통화를 한다. 두 사람 다 그렇게 외로워 보일 수가 없다. 그런가 하면 집으로 들어가 다른 남자와 섹스를 하면서 자신한테 문을 닫아달라고 말하는 아내를 발견하는 빌의 모습은 어떠한가! 배경음악으로도 낮은 음의 현악기가 구슬프게 연주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는 에디가 엄마와 싸우고 집을 나오게 되는 장면 정도를 제외하면 상당히 오랫동안 축제분위기가 지속된다. 그 시작점은 잭의 집에서의 첫 번째 파티다. 함께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 중 아직 안 나온 사람들이 마저 소개되고 에디는 더크 디글러로 이름을 바꾼다. 그리고 모든 스탭이 더크에게 반하고 마는 첫 번째 촬영장면이 나오고 이후 잭과 더크, 그의 영화 제작진은 몇 년간 승승장구 한다. 이 시퀀스에서 적지 않은 수의 씬이 나오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란 별 것 없다. 그냥 더크가 잘 나간다고 한 마디만 해도 설명이 될 것들이다. 여기서 보이는 것은 어떤 사건이 아니라 잘 나가는 더크와 그를 바라보거나 아님 각자 나름대로 어떤 관계를 맺고 꿈을 꾸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특히 이들의 꿈이 가장 커지는 것은 역시 “브락 랜더스와 체스트 락웰” 시리즈를 통해서이다. 물론 관객에게 보이는 브락 랜더스와 체스트 락웰의 영화는 연기와 촬영과 특수효과 모두 형편없지만(편집은 별로 안 나와서 모르겠고) 그 영화를 만들어놓고 뿌듯해하는, 스스로 감동하는 잭 호너의 얼굴만큼은 그 영화처럼 웃어넘길 수가 없다.

 그러나 빛나는 스타로서의 더크의 행진과 다른 모든 이들의 꿈은 이번에도 역시 갑자기, 막다른 벽을 만난다. 다음 시퀀스는 70년대를 보내고 80년대를 맞이하는 파티로 시작된다. 이전 시퀀스에서 거의 40여분간 아무런 사건도 없었는데 이 파티 한번에서 플로이드 곤돌리, 토드 파커 등 암울한 80년대를 더크와 동료들에게 배달해줄 새 인물들이 소개되고 더크는 처음으로 마약을 하게 되며 더 이상 아내를 참아내지 못한 빌이 권총으로 아내를 죽이고 자신의 머리통을 쏜다. 빌의 마지막 총소리가 곧 주인공들의 추락의 신호탄이다.

 파티가 시작되기 바로 전 포르노 영화 시상식에서 자신있게 트로피를 움켜쥐던 더크지만, 파티 이후로 그가 새 영화를 찍는 장면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그의 파트너였던 리드도 함께 몰락해 형편없는 노래를 녹음하면서 레코드를 취입하겠다는 허황된 꿈이나 꾸고 있다. 바뀐 시대에 발맞추어 비디오로 영화를 찍게 된 잭은 더 이상 ‘film’maker가 아니다. 벅은 포르노업계에서 일한 전력 때문에 오디오 기구상을 차리기 위한 대출을 받지 못하고 앰버는 다시는 아들을 볼 수 없음을 재판관한테 확인받는다. 이 장면들 모두가 다시 한 번 <부기 나이트>의 주제곡으로 한 씬에 묶여서 편집돼있다. 이후 이들의 몰락은 훨씬 더 심해져 롤러걸과 잭은 길을 가던 남자를 붙잡아 즉석에서 영화를 찍자고 하더니 결국 그 사람의 얼굴을 피투성이로 뭉개버리며 더크는 반대로 길에서 자신의 유일한 재산으로 구걸을 하려다 얻어맞고 있다.

 언뜻 보면 이들이 잘 나가는듯하다 결국 하나같이 좌절을 맞는 것이 그들이 포르노 업계의 종사자이기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벅과 앰버는 분명히 그들이 하는 일에 대한 사회적 시선 때문에 스스로 충분히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으며 더크가 하는 마약도 역시 그 업계 내에선 아주 흔하고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으로 영화 내내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내가 받은 인상으로는, 이들이 좌절하는 이유가 그들이 하는 일이 포르노‘이기’ 때문은 아니다. 그들이 겪는 장애가 포르노 때문인 것은 맞지만 반드시 그것이기 때문은 아니고, 다른 일을 하고 세상의 다른 문화와 다른 국면 속에서도 충분히 맞을 수 있는 상황이라는 뜻이다.

 이것을 다르게 말하자면 <부기 나이트>에 나오는 포르노 업계가 그 자체로도 하나의 세계라고 할 수도 있다. 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지고 명성을 얻고 사람끼리 만나서 사랑을 하고 우정을 쌓고 파티를 하고 가족관계를 맺는다. 앞에서 설명한 바대로 성공도 있고 좌절도 있다. 발전도 있고 퇴보도 있고 변화도 있다. 이것은 그 자체로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성질을 띤 어떤 힘이나, 직업과 같은 차원의 삶의 한 요소보다 훨씬 큰 것이다. 따라서 <부기 나이트>는 특정한 문화에 가까이 붙어서 그 특징과 그 속의 사람들을 확대해서 잘 보여주고는 있어도 결국 보편적인 삶에 관한 이야기다. 그렇다는 것은 각 인물들이 최종적으로 어떤 결말을 맞고 있느냐를 보아도 잘 드러난다. 한 마디로 사필귀정, 인과응보와 같은 옛말들이 의외로 이 영화 안에서 잘 통하고 있다는 것인데, 어디 한 번 예로 모든 등장인물 중 가장 어두운 결말을 맞는 두 사람을 살펴보자. 총 맞아 죽는 토드와 감옥에서 얻어맞는 대령 말이다. 토드는 영화 속에서 일들 제대로 하는 모습이 한 번도 보이지 않으며 계속 마약이나 빨다가 결국엔 강도짓을 하려고 하다가 오히려 자기가 돈을 빼앗으려 한 사람의 총에 맞아 죽는다. 대령은 성범죄 혐의로 감옥에 들어갔다. 그는 자기가 실제로 아이들을 건드린 적은 없다고 하고 그 말을 굳이 못 믿을 이유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대령이 처음 등장한 파티장면을 기억하는가? 그는 거기서 자기가 데려온 여자가 마약을 하다가 코피를 흘리고 실신을 했는데도 눈도 깜빡 않고 비서를 시켜 병원에 버리고 오라고 한다. 대령을 제외하고 <부기 나이트>의 어떤 인물도 직간접적으로 다른 사람을 죽음에 가깝게 한 적이 없다. 반대의 예로는 벅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순진하거나 성실했던 사람, 한때 방황했지만 기본적으로 착한 것 같고 빛나는 스타가 된다는 꿈을 버리지 않는 더크와 같은 사람들 보면 될 것이다.

 이렇게 <부기 나이트>를 그냥 ‘삶’에 대한 영화로 받아들일 때 엔딩이 한층 더 흥미롭다. 마지막 장면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영화 안에서 한번 형성됐다가 깨졌던 가족의 부활이다. 좁게는 앰버와 잭이 부모가 되고 더크와 롤러걸이 아들딸이 되는 핵가족이고 크게는 잭의 집과 영화 촬영장에서 항상 볼 수 있었던 모든 사람들(죽은 빌까지도 초상화로 남아 잭의 집에 들어와 있다)이 포함되는 대가족이다. 벅과 제시의 결혼을 통해 이제는 손자까지 있는 진짜 대가족이다. 그 안에서 사람들이 하는 일도 다양하여 리드는 마술을 하고 벅은 오디오장비를 팔고 제시는 그림을 그리며 롤러걸은 학교에서 공부를 한다. 더 이상은 직업적으로도 연관이 없이, 가족으로서만 묶여있다는 뜻이다. 마지막에 잭의 등 뒤를 따라다니는 롱테이크 숏에서 각 사람들이 집 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가만히 보면 아무래도 영화를 찍을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이 숏에서 문제의 주제곡이 세 번째로 나온다.

 이제 이 음악은 그저 처량하고 우울하지만은 않다. 꼭 아름답지만은 않게, 그렇다고 추하지도 않게, 한 때는 승승장구하지만 곧 장애물을 만나고 마는, 환경과 출신이란 것을 좀처럼 벗어나기 힘들지만 그래도 개중 누군가는 오래 간직한 꿈을 이루기도 하는 그런 세상과 가족과 개인의 삶을 압축한다. 필모그라피를 잘 보면 세상을 보여주고 삶을 보여주고 삶의 자세에 대해서 얘기하려는 P. T. 앤더슨의 태도는 일관적이고, 점점 강해지는 것 같다. 데뷔작인 <시드니>가 철저하게 시드니라는 한 사람의 얼굴(필립 베이커 홀의 주름살은 정말이지!)과 라이프스타일에 집착하고 있었던 데 비해 다음 작품인 <부기 나이트>는 훨씬 많은 사람과 큰 가족을 다루고 그들이 포함된 세계까지 깊은 애정을 담아 관객에게 보여주고 있다. <매그놀리아>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가 각 인물의 심리와 감정에 밀착하면서 관객에게 특정한 삶의 자세를 가질 것을 호소하기까지 한다. <펀치 드렁크 러브>에 대해선 논란이 있지만 그 논란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이것은 사랑에 관한 아주 개인적인 영화라는 이론을 세울 수 있다. 많은 경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에 대한 개인적인, 그만큼 솔직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이 글에선 거의 다루지 못했지만 많은 이들이 동의하건대 앤더슨 감독이 영화언어를 다루는 솜씨는 가히 살아있는 감독 중 최강이랄 만하다. 이러한 천재성에다 앞에서 길게 얘기한 인생을 얘기하려는 야심, 그리고 네 편의 장편영화로 쌓은 경륜이란 것이 하나가 됐을 때 나올 법한 영화라면 참 큰 것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데 <데어 윌 비 블러드>는 그런 기대에 조금도 어긋나지 않는 영화였다. 참 모던한 의미에서 진정한 예술가랄까.

by 염맨 | 2008/12/29 01:51 | 영화 잡설, 감상, 리뷰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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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염맨 at 2008/12/29 01:51
모든 캡쳐는 리사이즈가 안돼서 클릭하시면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ㅈㅅ
Commented at 2008/12/29 02:0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염맨 at 2008/12/29 09:15
싸이 클럽에 올린 걸 링크했더니 싸이 로긴한 사람한테만 보였나보다. 이글루 계정으로 다시 올렸다
Commented by 비니루 at 2008/12/29 10:36
pta 만세! 거의 제일 좋아하는 영화예요. 잘 읽었음!
Commented by 염맨 at 2009/01/05 17:51
만세죠!!
근데 잘 읽을만한 글은 아닌 것 같음...ㅜ.ㅜ.ㅜ
Commented by Jude at 2009/02/04 14:38
한국에서 안먹히는 감독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지. 폴토머스 앤더슨
Commented by 염맨 at 2009/02/04 22:32
엥?
앤더슨이 안 먹힌다고 생각한적 없는데..;; 충분히 평가받지 못했다면 몰라도
Commented by nOiZe at 2010/08/29 22:52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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