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진지하게 놀고, 묻는다 - <고고70>


 밴드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로서는 아주 평범한 도입부가 나온다. 주인공이 자신과 음악적 색이 맞는 다른 멤버를 찾아 밴드를 구성하고 이들이 생각보다 더 강한 화학작용을 일으켜 작은 공연장에서 스타가 되고 자연스레 더 큰 무대를 찾아 떠난다. 서울에 간 이후의 전개도 한 동안은 전형적이다. 작은 동네에선 자기들이 짱인 줄 알았지만 대도시에 와보니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어 작은 여관방에서 궁상맞게 지내다 유일하게 자기들을 알아본 기존 음악계의 권위자의 도움을 통해 겨우 큰 무대에 설 기회를 갖게 되고 여기서 누구도 예상치 못한 히트를 해 마침내 유명밴드가 된다. 이후의 자연스러운 전개는 이들이 한동안 더 승승장구하다 성공의 정점에 다다라서 내분이나 외부의 충격으로 위기를 맞고 이를 극복해 다시 멋진 공연을 하게 되는 것이리라.
 헌데 여기서 <고고 70>은 단지 밴드 전기영화라는 특정 장르의 관습이 아니라, 극영화 일반이 공유하는 광범위한 관습에서도 크게 벗어나는 선택을 한다. 내러티브가 사라진다. 거의 30여분간(영화관에서 보았으므로 정확히 시간을 재지는 못했다. 그냥 느낌상 30분) 아무런 내러티브도 없이 데블스의 무대만 주구장창 보여주고 들려주는 것이다. 닐바나에서 본격적으로 공연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촬영과 편집도 비교적 안정되고 평범한 형태였던 것 같은데 이 기나긴 공연장면부터 슬슬 들고찍기가 등장하고 조명과 노출을 최적화하지 않아 입자가 거칠게 깨지는 화면도 나오기 시작한다. 아무튼 닐바나에서의 공연이 계속되는 동안 나한텐 이런 질문까지 생겼다. "왜 그냥 <샤인 어 라이트>를 찍지 않았을까?"

 그러다 갑자기 내러티브가 나타난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우리가 처음에 예상했던 밴드 전기영화의 전형적 플롯을 다시 따르기 시작한다. 성공에 취한 멤버들간의 불화가 나타나고 아예 쪼개져서 연주활동을 한다. 물론 이들에게 닥치는 가장 큰 위기는 멤버 중 하나인 동수의 죽음이다. 공연장의 화재로 동수가 죽고 남은 멤버들은 그 부모님의 집을 찾는다. 그리고 전세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어느 시골길에서 상규가 밴드 해체를 선언한다. 영화의 처음부터 밴드해체의 이 순간까지 오면서 유의해야 할 한 가지는 그 동안 70년대 시대상에 대한 묘사가 기호적인 수준에 그친다는 것이다. 그러한 기호적 묘사의 마지막 순서는 장발/미니스커트 단속 뉴스릴 화면이다.

 이후부터는, 그 전까지 계속 나머지 요소들과 분리되어 거의 순수한 형태로 표현됐던 영화의 각 요소들이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한다. 여기서 요소들이 합쳐진다는 말의 뜻은, 그 결과로 비로소 평범한 영화의 형태가 나온다는 것이다. 그냥 평범한 (그러나 잘 만든)영화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러티브, 음악, 시대적 분위기 등이 서로 분리될 수 없게 뭉쳐서 나온다. 헌데 <고고 70>에서는 한동안은 평범한 내러티브의 이야기 전개만 하다가, 한동안 공연만 하다가, 그러면서 시대상을 기호적으로만 전달하다가 영화 후반에 가서야 이들이 하나로 굴러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미 언급한 장발 단속 뉴스릴 화면이 나오고부터 모두 장발이었던 데블스의 멤버들이 비로소 시대와 충돌하기 시작한다. 엎친데 덮친 격(이라기보다 독재정권의 문화탄압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맥락 안에서)으로 클럽 닐바나까지 영업정지를 당한다. 이렇게 암울했던 시대가 마침내 주인공들에게까지 그늘을 드리우고 그들을 구덩이로 끌고 가기 시작한다.

 이렇게 위기가 고조되면 정상적인 플롯에서라면 당연히 다음엔 그 극적인 해결이 나와야 한다. <고고 70>은 그렇게 한다. 여기엔 보통은 좋은 플롯의 요소가 되는 역설도 있다. 경찰에 끌려와 고문을 당하며 음악을 하는 다른 동료들을 배신하는 동안 자기들끼리 알아서 흩어졌던 데블스는 어느 새 다시 하나로 모여 있다. 헌데 이런 정상적인 플롯과 각 요소의 조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고 70>은 아주 평범한 영화는 되지 못한다. 관객이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하는 것을 끊임없이 방해하기 때문이다. 인물과의 정서적 거리를 좁히기보다는 그들을 바로 옆에서 나 스스로의 시선으로 관찰하게 만드는 들고찍기와 의도적으로 거친 편집(씬과 씬의 연결이 거칠다는 게 아니라 씬 내에서, 예를 들면 버스에서 내려 상규와 만식이 대화하는데 말하는 사람이 바뀌지도 않고 카메라가 비추는 인물도 그대로인데 카메라의 방향만 측면에서 정면으로 바뀐다거나 하는 것), 배우들의 (대사의 녹음방식을 포함한)연기양식이 모두 그런 역할을 한다. 감정이입을 거부하는 이러한 연기는 신민아가 제일 뚜렷하게 보여주는데, 예를 들어 그가 상규랑 옥상에서 뽀뽀할 뻔 하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얼굴도 충분히 예쁘고 말만 조금만 예쁘게 하면 얼마든지 감정이입이 될텐데 그 묘하게 강한 억양과 표정 덕분에 그 감정을 내 것으로 만들기가 쉽지 않다.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이 인물들은 대단원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다시 한 번 당연히, 밴드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그들의 감동적인 공연 장면이다. 마지막 공연이 앞 쪽의 <샤인 어 라이트>식의 시퀀스와 다른 점은 이번엔 내러티브과 긴밀하게(어쩌면 꽤 느슨하게) 결합돼 있다는 것이다. 공연을 시작할 때부터 죽은 동료를 기리며 극적으로 나간다. 영화 속에서 이루어지는 공연 자체의 내재적 속성이 이미 어느 정도 극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 공연이 벌어지는 상황은 더하다. 독재정권을 상징하는 무장한 경찰병력이 젊은이들이 축제를 벌이는 곳에 진입하려 한다. 이를 위해 최루탄(이것이 독재정권을 포함한 사회의 부조리와 그러한 부조리를 조장하는 권력에 대한 젊은이들의 적극적인 반대행위인 시위에 대한 진압을 연상케 함은 두말할 것도 없다)을 먼저 집어넣는다. 헌데, 최루탄 연기에 기침하고 울고 토하고 쓰러지던 이 청년들이 어느 선동가가 앞장서기 시작하자, 다른 무엇을 하는 것도 아니고, 다시 놀기 시작한다. 울고 토하고 쓰러지다 말고는 웃고 노래하며 춤추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순간(사실 그보다 꽤 오래전부터이기도 하지만) 관객은 바로 그 현장에 서있게 된다. 앞에서 노래하는 데블스의 멤버로서도 아니고 최루탄 연기에 콧물을 뿜으면서도 날뛰는 공연 관람객으로서도 아니고, 그냥 영화 <고고70>을 보는 자기 자신을 유지하면서 그 공연장으로 들어간다. 물론 이런 일은 관객이 인물과 거리를 둠으로써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거기에 더하여 다른 차원에서 영화에 몰입이 될 때만 가능한 것이고 <고고 70>이 제공하는 다른 차원이란 바로 음악이다.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비교적)순수한 예술로서의 음악과 불합리하고 비인간적인 지배체제 내에서의 생존방식, 혹은 나름대로 잘 사는 방법으로서의 음악. 이렇게 두 가지, 어쩌면 한 가지의 의미를 가지는 음악으로 관객은 <고고 70>에 몰입하고 열광하며 그것와 대화를 할 수 있게 된다.

 그 대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최상의 결과는 이 시대에서 우리의 놀이와 음악을 찾아내어 생존하고, 즐겁게 사는 것이리라. 그리고 내 생각에 <고고 70>은 위에서 설명한 특질들로 인해 충분히 그렇게 할 가능성을 우리에게 준다. 다시 말해 이 영화는 암울했던 시대에도 놀 수 있었던 사람들을 보여주고, 그들이 놀며 뿜었던 열기를 살갗으로 느끼게 하고, 그러면서도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 남아있을 수 있게 함으로 지금 우리의 삶의 방식에 대해 반성하게 만드는 것이다. 영화를 본 모든 관객이 나처럼 열광한 것 같지는 않지만 눈물 좀 흘린 나로서는 스스로의 이러한 설명에 만족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래도 남는 질문은 그렇다면 그 이상한 구조는 왜 필요했느냐는 것이다. 전형적인 밴드 전기영화의 플롯으로 가다가 30분동안 내러티브가 실종되다가(그러면서 시대상은 기호적으로만 묘사되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이들을 하나로 합쳐버리는 구조. 일단 귀류법적으로 생각해보자면 지치지 않기 위해 그랬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처음부터 카메라 막 손으로 들고 찍으면서 공연도 보여주고 밴드의 일대기 내러티브도 전개하고 그러면서 시대에 대한 생생한 묘사까지 함께 했으면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영화 끝까지 가는 일에만도 상당한 에너지를 쏟아야 했을 것 같다. 물론 이런 게 근본적인 해답이 되지는 않는다.

 더 근본적인 답은 결국 각자가 영화에서 찾아야겠다. 물론 나도 나중에 DVD로든 무엇으로든 다시 보면서 그 답을 찾아볼 것이다. 다만 글을 좀 더 완결성있게 하기 위해 한 마디 덧붙이자면, 그 불합리했던, 그리고 지금도 불합리한 시대에 대해서 발언하는 데에는 저렇게 이상해보이는 화법이 적절할지도 모른다. 다른 방법으로는 말하는 게 불가능할 수도 있다.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리는 개인의 삶을 세세하게 묘사함으로 그 역사까지 돌아보게 만드는 게 말로야 쉽지만 음악영화를 만들면서는 얼마나 힘들겠는가. 실은 <고고 70>이 택한 길이야말로 역사를 서술하고 그로부터 과거와 현재를 반성하게 만드는 방식으로는 감정적 설득력과 객관성을 동시에 지니는 드문 방법이라는 얘기다.

 

 *개봉작 가지고 영화평 쓰는게 얼마만인지 확인해보니 <두 얼굴의 여친> 이후 처음이다. 1년도 더 됐다.

by 염맨 | 2008/10/15 01:51 | 영화 잡설, 감상, 리뷰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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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환자 at 2008/10/15 11:06
그러게 염맨은 DVD를 보면서 글을 쓴다더니. 글 잘 읽었다.
Commented by 염맨 at 2008/10/15 18:19
환자/ 먼저 글 올려준 덕에 나쁜 기억력갖고도 참고할 수 있었다.
Commented at 2008/10/15 19:0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phice at 2008/10/17 13:43
아 이 영화 보고싶다.
Commented by RedGhost at 2008/10/18 11:31
락공연의 특성이라고 봐야 하는 게 적당하다. 처음 쥬다스 프리스트를 접했을때의 감흥을 떠올릴때 특히 그러하다. 마지막 부분은 시대상의 반영을 위한 조치 - 궁극적으로는 환자의 포스팅 대로 현재를 다시보기 위한 것이지만 - 로 보인다. 한국 로큰롤1세대를 위해서 바친다고 하지 않나?
Commented by 염맨 at 2008/10/23 08:55
phice/ 쩝쩝쩝...... 재미없다는 사람도 많으니 너무 부러워하진 않아도 될 것 같다.

redghost/ 무엇이 락공연의 특성이란 말인가? 등장인물에게 감정이입하지 않고 자기 자신으로서 공연을 즐기는 것? 그리고 그것에 대해 말한 거라면, 그건 <고고70>이 락 음악을 다룸으로써 도출되는 자연스러운 결과인가, 아니면 내가 언급한 다른 테크닉, 혹은 연출법 등에 의하나 특수한 결과인가?

Commented by 염맨 at 2008/10/23 08:57
비공개/ 차승우 훌륭했지요. 꼭 그다지 제 취향은 아니었지만...
Commented by 박현정 at 2011/03/18 22:39
겉멋든영화.알맹이없는 영화. 조승우와 신민아몸매. 크라잉넛적인 에너지미믹.
이것만 내세운 영화. 뭐..감독은 나름의 신념으로 만들었을진몰라도..쩝-
Commented by 염맨 at 2011/03/24 23:18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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