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 눈물겹다. <두 얼굴의 여친>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을 위해 - 이 영화는 예고편에서 받는 인상과는 달리(이 말을 예고편 제작자에 대한 비난으로 듣지는 말아달라. 영화를 본 뒤인 지금엔 그 고충을 이해한다) 어디서 웃고 어디서 울어야 할 지 할 수 없는 초난감 코미디 영화가 아니다. 그냥 그럴 싸하게 잘 만든 기획상업영화도 아니다. 반어같은 말장난 없이, 엄청난 비극이라 하겠다. 내가 지금까지 본 수백여편의 영화중에 영화관에서만 세 번 이상 보는 영화는 이게 처음이다. 웬만하면 한 번, 가능하면 두 번 보실 것을 권한다. 이번주 내로 서울 시내의 모든 스크린에서 내릴 것 같은 눈치니 서두르시라. 네이버 영화 검색해보면 상영관이 나올테고 일단 코엑스 메가박스는 지금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아래의 글은 영화를 직접 보았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평이다.

 
<두 얼굴의 여친>은 중간에 엄청난 비극으로 돌변하지만 처음엔 이러한 눈치를 철저하게 숨긴다. 후반부에 있을 눈물바다에 대해선 시치미떼고(이 영화 보고 우는 관객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난 줄줄 울었으니) 그저 발랄한 코미디인 척 한다. 덕분에 중간에 돌변하는 과정에 어색함이 있긴 하나, 이는 어떻게든 받아들여지고 마는데 그것은 이 영화가 행복하게 끝나기 어려운 설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 사랑하는 두(세?) 주인공 중 하나(둘?)가 죽어야 하는, 죽을 수 밖에 없는 것 같은 설정.
 
 관객이 이 비극적인 설정에 대해 모르는 동안에는 구창이나 아니도 모른다. 하니는 알고 있는 것으로 짐작되지만 그 사실을 티내지 않는다. 그 시간동안 아니가 옛연인 때문에 느끼는 혼란과 고통은 나중에 그 무게가 변하긴 하지만, 초반에는 로맨틱 코미디를 포함하여 멜로 플롯이 있는 어느 영화에나 나올 만한 수준으로 묘사된다. 다만 아니의 유아적인 성격(논리가 부족한 행동, 아이같은 말투)은 이 영화의 특성이고 구창은 그러한 아니를 좋아하게 된다. 구창이나 아니나 서로 아니가 그 성격 때문에 문제를 일으키면 구창이 수습하고 받아주는 관계인 것처럼 서로 얘기하지만 그냥 하는 소리고, 분명 두 사람의 사랑은 서로를 더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아니가 죽어야 한다는 게 문제다. 아니가 유리의 r교대인격이란게 밝혀진 이상 아니가 계속 존재해야 할 이유는 거의 없다. 애초에 죽은 연인으로 인한 상처를 잊고 현실을 부정하려 만들어낸 인격인데 오히려 그 환상 속에서 더 고통을 겪고, 구창을 포함한 주위 사람들까지 힘들게 하지 않는가. 게다가 영화의 마지막을 보면 아니/하니가 사라진 이후 유리는 매일 공원을 뛰며 건강하게 살고 있고 구창도 취직까지 하여 모처럼 떳떳한 사회생활을 한다. 두 사람 다 더 잘 살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해피엔드라면 굳이 두 사람의 귓바퀴에다 글자까지 써가며 그렇게 강조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건 억지다. 너무 슬픈 대단원을 인정할 수 없어서 관객과 스스로에게 이건 해피엔드라고 우기는 것이다. 그건 무엇 때문에?

 두말할 것도 없이 구창과 아니의 사랑 때문이다. <두 얼굴의 여친>은 구창이 술집에서 돼지머리에 키스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토록 오래 간절히 사랑에 주린 구창과 연인과 사별하고 상처를 입은 아니. 이 간절한 두 사람의 사랑이 발전하는 과정은 아주 설득력 있게 묘사된다. 한번도 연애를 해본 적 없는 구창과 유아적인 성격의 아니는 첫 만남에서 서로에게 직접 말을 하지 못한다. 분명 상대방에게 들으라고 하는 말이나, 마치 옆에 있는 다른 사람한테 하는 것처럼, 혹은 혼잣말처럼 해야만 그 말들을 입 밖으로 낼 수 있는 참 안타까운 친구들이다. 그런 두 사람이 서로 주고 받으며 위로하기 시작하고 구창은 아니 덕에 별 수모를 겪어가면서까지 모처럼 제대로 돈을 벌어보기도 한다. 그리고 하니가 끼어들어 구창을 패는 깡패에서 구창한테 놀아달라고 하는 불쌍한 친구로 성격이 변하면서 구창-아니-하니(가나다 순)의 삼각관계가 형성된다. 이 부분에서 반드시 두 배우의 공을 언급해야 할 것이다. 어린애같은 성격이 귀여워보이는 아니에다 깡패 하니, 그리고 건강한 유리까지 설득력있게 1인 삼역을 해내는 정려원이나 모든 장면에서 끝내주는 타이밍을 보여주며 코미디의 호흡을 조절하고(물론 이에는 연출의 힘이 클 것이다) 멜로연기까지 진지하게 해내는 봉태규는 정말 훌륭했다.

 그런데 이렇게 복잡하고 재미있게 발전한 코미디 플롯이 다 뒤집어지고, 세 사람이 모두 유리와 시후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면서 그들의 사랑은 없어져야만 하는 것이 된다. 분명 세 사람 모두 이에 대해 고민하여 무언가 결론을 얻은 흔적이 보인다. 구창은 유리의 언니에게 진실을 듣고 나서 헤어지기 전에 아니/하니에게 바다를 보여주어야겠단 결심을 한다. 그리고 아니는 마침내 자라서 유아적인 성격을 벗게 된다. 공항에서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아니의 모든 행동이 연기처럼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특히 마지막, 구창에게 등대가 돼 달라 부탁하는 장면. 구창이 아니의 얼굴을 볼 수 없는 상태에서 조금만 더 멀리 가달라고 계속 부탁하는 아니. 그 표정과 말투는 분명 그 전까지 아니가 보여준 것과 같은 어린아이의 그것이 아니다. 그리고 하니는 간접적으로나마 구창에게 사랑 고백을 한뒤 마지막으로 아니에게 작별할 기회를 주고는, 영영 없어진다. 모두들 그 아픔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의 사랑에는 도저히 답이 없다는 결론을 얻은 것이다.

 정말 답이 없는지는 모르나 중요한 것은 인물들의 선택이다. 이것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과는 크게 다르다. 그들은 사랑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노력했으나 사고와 우연이 복잡하게 겹치면서 죽음이란 결론으로 치달은 것이다. 하지만 <두 얼굴의 여친>의 연인들은 그 비극을 스스로 선택한다. 이들이 각자 고민하고 결론지은 어떤 면에서 세 사람의 성장으로 볼 수 있다. 아니는 그제야 최초로 과거에 묶이지 않은 자신만의 결단을 내린 것이고 조카 학원비까지 떼어 먹던 구창 역시 모처럼 유리를 위한(아니를 위한?) 이타심을 발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니야 원래 강했지만, 구창에게 못하던 고백을 했다는 사실에 의미를 둘 수 있다.

 인물들이 각자 알아서 고민하여 결론을 짓고 영화는 더 이상 그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그로 인하여 정말 답이 없느냐는 질문은 관객에게 넘어가고 영화의 비극성은 더욱 강해진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저 사랑했으나 이제는 자기가 결정한 비극적인 결말을 아는 채로, 바닷가에서 마지막 행복한 순간을 즐기는 그 표정이라니. 놀라운 촬영술이 쓰이진 않았지만 어느 영화에서보다 아름다운 황혼 장면이다. 두 번쯤 보면, 아름다운 영화이기도 하다.

by 염맨 | 2007/10/07 23:04 | 영화 잡설, 감상, 리뷰 | 트랙백(1)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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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The Catcher .. at 2007/10/08 15:06

제목 : 두 얼굴의 여친
두 얼굴의 여친 포스터 ** 미리 밝히는 바이지만 최대한 스포일러를 줄이고자 하였지만 스포일러가 약간은 포함되어 있다. 의외로 참신하며 괜찮았던 영화 여자친구의 동생이 강력추천 하여 보게 된 영화다. 제목만 놓고 보면 참신성이라고는 전혀 기대할 수 없는 느낌이지만, 보고나니 그 생각은 180바뀌어 버렸다. 정려원의 연기가 다소 부족해보였으나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스토리가 상당히 참신하여 좋았다. 종종 이 영화는 '엽기적인 그녀'......more

Commented by 염맨 at 2007/10/07 23:13
아아, 이 글 하나도 안 슬프다. 하나도 안 감동적이다. 꼭 영화를 직접들 보시라. 웬만하면 두 번.
Commented at 2007/10/08 00:0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Catcher at 2007/10/08 15:06
ㅋ 첫번째 트랙백 잘못 날렸네요 지워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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