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영화


미국 영화사에는 급진적이고 충격적이고, 그리고 뛰어났던 걸작들이 한꺼번에 나온 시기가 두 번 있었다. 하나는 40~50년대 필름 누아르의 시기이고, 또 하나는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를 아우르는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시기이다. 프랑스 어로 '검은 영화'라는 뜻의 필름 누아르는 이름 그대로 아주 어둡고 검은 화면 속에 그 화면만큼이나 암울한 이야기들을 담아냈다. 이 영화들의 주인공은 영웅이 아니었고 해피 엔딩 따위도 찾기 힘들었다. 명암대비를 강조하는 어두운 조명과 독일 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은 수직선과 사선 구도 등의 촬영 양식상의 특징들 덕에 일반적으로 이 필름 누아르들은 미국의 다른 어떤 영화들 보다도 폼나는 영화가 되었다.
뉴 아메리칸 시네마들은 내러티브, 주제, 형식 그 어떤 것을 보아도 파격적인 영화들이었다. 필름 누아르와는 달리 뉴 아메리칸 시네마는 내러티브 상에서나 형식 면으로나 그 안에 속하는 영화들을 적당히 묶어주기가 쉽지 않는데, 그것은 이 영화들이 모두 제멋대로라는 공통점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편집과 스토리의 기본원칙들을 무시하는 영화들이 있었고 이해가 안되는 줌인과 극단적인 클로즈업도 심심찮게 등장했다. 여주인공은 악마를 뱃속에 품었고 경찰은 결코 시민의 신뢰를 받지 못했으며 그럴 만하게 행동하기도 했다. 악마와 싸우던 신부는 죽음으로만 사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두 시대는 모두 전쟁이라는 공통된 역사적 배경을 지닌다. 필름 누아르는 제 2차 세계대전과 연관이 깊고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시대는 베트남전 이후에 도래했다. 전쟁은 미국 사회를 암울하게 만들고 미국인들이 절망에 빠지거나 고민하게 만들었다. 그런 때에 미학적으로도 사회학적으로도 가장 충격적인 영화들이 등장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걸프전과 이라크전이 터져도 미국 영화판에 어떤 특이한 현상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실 이것을 굳이 영화판을 통해야 알 수 있는 건 아니고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현대에 전쟁을 일으키는 당사자들한테 전쟁은 전혀 고통이 되지 않는다. 미국 사회와 할리우드는 이 전쟁들에 고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며 간접적인 영향 조차 거의 받지 않는다.

그래서 전쟁을 일으킨 이들은 사자 기린 얼룩말 하마의 탈출기를 즐기고 있고 전쟁을 겪는 이들은 군인에게 겁탈당한 소녀가 자살하는 내용의 영화를 만들고 있다. 누가 아니라고 하겠느냐만, 안 그래도 끔찍했던 전쟁은 점점 더 무서운 것이 돼간다.



*그러고보니 오늘이 전몰자들을 기리는 날이었구나.

*문득, 9/11조차 그들에겐 별 충격이 되지 못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단발적인 사건이어서 그런 건가? 하기사, 9/11을 다룬 영화들도 단발적으로는 나왔다.

by 염맨 | 2005/06/06 14:07 | 영화 잡설, 감상, 리뷰 | 트랙백(1)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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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rumic71 at 2005/06/06 19:47
정확히 말하자면 전쟁 이후의 경제적 피폐 상태에서 영향받은 것들이라 요즘은 별 영향이 없는 것이죠.
Commented by 염맨 at 2005/06/06 20:02
구체적이어서 좋군요. 경제적 피폐가 전부는 아니었던 것 같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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