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오미'의 용법 - 꼰대주의


 논의를 좀 나눠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합목적성의 관점에서 먼저 말해보겠습니다.


 1. '오오미'란 말을 오히려 더 열심히 써줘야 한다는 데에 동의합니다. 지금 당신들의 말을 정확히 인용하기는 힘들어서 대충 넘어갑니다만 세라여신님이 말한 '약자의 스티그마'라든가, 탁구군이 말한 '오히려 더 전복적'같은 말의 뜻을 알 것 같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거의 납득했습니다. 스스로 생각해보아도 전라도 사투리를 인터넷에서 금지한다고 해서 장기적으로 무슨 답이 나올 것 같지는 않더군요.




 2. 이번에는 꼰대가 그 말을 들으면서 느끼는 불편함에 대해서 얘기해봅시다. 여기서 잠시 탁구군이 뭐라고 말했는지 두 가지 가정을 해봅니다. 만약 제 가정이 틀렸을 경우 '가정이 틀렸다'라고만 간단히 말해주시면 충분하고 그 내용에 대해 자세히 반박해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오해한 부분은 오히려 제가 사과할 일이겠죠. 가정이 둘 다 틀렸다면 저는 설득의 가망이 없을 정도로 이해력이 나쁜 것 같으니 저를 포기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아무튼 첫번째 가정입니다.


 (1) 혹시 탁구군은 '오오미'를 쓰는 것이 합목적적이기 때문에, 그 말을 불편하게 느끼는 것이 과민하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바꿔말하면 그것이 결과적으로 부정적인 가치생산에 기여하기 때문에, 합목적성의 관점에서 그것이 '과하게(괜찮은 정도를 넘어서)' 민감하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만약 그러한 것이라면 저는 이러한 비유로 대답하겠습니다.
 감기에 걸린 어린아이가 주사를 맞아야 하는데 아파서 싫다고 투정을 부릴 때, 의사선생님은 이 주사는 비록 맞을 땐 아프지만 이것을 맞아야만 병이 나으니 아픔을 참아야 한다고 말해주어야 합니다. 주사를 맞는게 좋으니까 주사는 아픈 것도 아니다, 그것을 아프다고 느끼는 것은 너의 과민함이다 라고 윽박지르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2) 허나 탁구군이 계속 쓰는 '훈고학' '과민함' 같은 개념을 보았을 때 탁구군의 의견은 위의 가정과는 다른 것 같습니다. 탁구군은, 우리가 정말로 오오미란 말을 불편하게 느낄 이유도 없고 필요도 없는데 꼰대들이 탁구군의 발화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맥락을 끌고와서 괜히 일을 복잡하게 만든다고 느끼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떤 거대한 잉여계에 익숙한 사람들(디씨잉여를 말합니다. 트잉여와는 다릅니다)의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그들이 '오오미'란 말을 들을 때 그 용법의 90%는 전라도비하입니다. 그런 그들이 다른 곳에서 '오오미'란 표현을 들었을 때 나머지 90%의 용법에서의 같은 표현을 들었을 때의 감정을 느끼고, 그 때의 용법을 연상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요?

 비록 화자인 탁구군의 발화의 맥락과는 아무 상관이 없더라도, 청자에게 익숙한 개별발화이상의 어떤 맥락 때문에 어느 정도의 연상작용이 일어나는 것까지 '훈고학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 경우에도 여전히 위의 비유에서 말한 것과 같이 '설령 지금 당신이 불편함을 느끼더라도 오오미란 말을 계속 써주는 것이 사회적으로 합목적적이다. 심지어 당신의 입장에서 봐도 이 말이 누구에게나 편히 쓰이는 말이 되어야 결국 당신 듣기에도 편해지지 않겠나' 하고 말해줄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네 집단만이 갖고 있는 맥락에서 느낀 불편함을 가지고 '지적질'하는 것을 비난할 수도 있을테고요.



 3. 디씨잉여도 아니고 '오오미'의 전라도비하적인 용법에 딱히 익숙하지도 않으면서 굳이 그 연원을 찾아내서 그 말을 쓰는게 나쁘다고 지적질 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많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때 그들은 자기들이 합목적적으로 행동한다고, 즉 '오오미'라는 말을 못 쓰게 하는 것이 전라도 사람들에게나 다른 사람들에게나 더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죠. 이 경우에 비로소 탁구군이 말하는 대로 이들을 '꼰대'라고 부를 수 있을 겁니다. 원래 사회더러 망하라고 자기주장을 열심히 하는 꼰대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기왕 합목적성의 관점을 꺼내든 김에 더 말하자면, 이런 꼰대들에 대해서는 1.의 논증을 더 자세히 해줘야지 '훈장질 하지마라'고 받아치는건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말했듯이 이 꼰대들(저도 포함입니다, 꼰대 비하한다고 하지 마세요)도 사회를 더 좋게 만들고 싶은 것이니까요. 물론 저는 그 자세한 논증을 할 능력은 없습니다.

 게다가 1.의 점에 있어서 제가 일단 납득하기는 했지만 정말로 그러한지, 정말로 그 말을 계속 써주는 게 옳은지도 여전히 논의 가능한 주제라고 생각해요.

by 염맨 | 2011/06/12 02:49 | 트랙백 | 덧글(0)

발렌타인 은혼

동생이 은혼 14~18, 21, 22권을 사왔다. 민법 동영상 강의 듣고 나서 새로 사온 만화책을 읽고 있다보니 지금 시각(01:23)이 돼버렸다.

나는 올해 내 생일도 거의 까먹고 있다가 누가 말해줘서(사람이었는지, 아니면 페이스북이나 싸이월드였는지도) 일주일 전쯤에 생각났었다. 오늘 읽은 은혼에는 발렌타인 데이 에피소드가 한 개 나와서 며칠 뒤가 발렌타인 데이라는 것이 생각났다.

문제의 에피소드는 어느 골드미스의 짝사랑을 모두가 응원해주지만 정작 그 골드미스에게 초콜렛을 받은 남자는 '좀 부담스러워...'하면서 폭발해버린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 남자가 우주악당이었기에 덕분에 우주의 평화를 지킬 수는 있었다.

올해의 발렌타인에도 우주의 평화가 지켜지면 좋겠다. 안 되면 한국의 평화나, 나의 평화라도.


by 염맨 | 2011/02/10 01:42 | 트랙백 | 덧글(2)

하나마나


 대학교에서 레포트 몇 편 쓰면서 하나마나한 말을 쓰는 것을 무척 싫어하게 되었다. 남들이 이미 다 자세하게 연구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역사적, 현실적 배경을 밝히고 결론까지 내려둔 일들이 있는데,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그냥 살다가, 친구랑 얘기하다가 머리속에 문득 떠오른 것만으로 같은 일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이, 부끄럽게 여겨지는 것이다.

 그래서 부끄럽지 않게 글을 쓰자면 이미 나온 연구에 대해 조사를 해야 되는데 그건 너무 귀찮다. 그런 식으로 글 쓰는 건 이미 수업을 위해 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래서 블로그에 글을 잘 안 쓰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거 별로 부끄럽게 생각 안 하는 모양이다. 하긴 글을 쓰는 목적에 따라 다르겠지. 난 아무래도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을 쓰다보니, <드래곤 길들이기> 완전 귀엽고 신난다 하는 식의 이야기는 도통 쓸모가 없게 느껴지는 것이다. <유령 작가>의 감독 로만 폴란스키는 거장이며, 성추행 사건으로 구금돼있다는 얘기, 뉴스에 수없이 나온 말 들인데 대체 그런 말 블로그에서 또 해서 뭐 하나.

 각자의 사연으로 글 쓰는 이들을 비하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당연히 그럴 자격도 없고. 그냥 나는 그런 거 잘 못하겠다는 뜻이다.


 그래서 요즘도 머리속에 굴러다니는 몇 가지 큰 주제가 있는데 글로 써낼 엄두가 안 난다. 이야기들이 워낙 굵직굵직해서 최소한 논문 한 편이나 단행본 한 권 분량으로는 써야, 하나마나 한 얘기가 아니게 될 수 있다.
 
 "감성과 감수성의 차이". 미학 논문 수십개는 읽어봐야 비슷한 얘기가 언제쯤 나왔는지, 얼마나 비슷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근데 그 논문 한편한편이 엄청나게 난해할 가능성, 영역본도 찾기 힘들 가능성이 높다. 우리말로 된 각종 2차저작물들은 있겠지만, 그리고 학부 레포트 제출용으로는 그냥 그런 것만 참조해서도 글을 썼었지만 자진해서 글을 쓰는 마당에 그런 식은 부끄럽다.

 "참정권의 포기 불가능성". 이건 국문으로 된 글만 검색해서 참고해도 무난할 거 같다. 우리나라도 정치학, 사회학, 법학 등에는 충분한 역사가 있으니까. 덩치도 비교적 작다. 현실적으로, 완성된 글로 써낼 가능성이 셋 중 가장 높다. 그래도 역시, 귀찮아서 안 할 가능성이 더 높다. 이제 방학이 와서 한동안 글 쓰는 의무가 부과되지 않을 테니 이번 기회에 쓸 수도 있지만, 하필이면 지방선거가 끝난 직후라 타이밍이 안 좋다. 선거 직전이 좋았는데.

 마지막 주제는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승자독식체제"이다. 이건 학술적으로는 어떤지 모르겠는데, 시사 평론이나 칼럼 같은 데서 단골로 나오는 말이다. 이에 대해 수많은 인과관계를 엄밀하게 설정하면서 누구에게나 최소한의 설득력을 갖는 이야기를 하려면 역시 학술적인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헌데 '한국사회를 지배하는'이라고 제목을 달아놓은 것이 문제다. 교육, 경제, 정치 등 사회의 모든 면을 다뤄야 한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도 동네 구멍가게와 SSM, 중소기업과 대기업, 법조계, 의료계, 대학계 등 하나하나 따져봐야 할 것이 더럽게 많다. 헌데 이 정도로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승자독식체제'라는 패러다임의 유효성을 충분히 증명할 수 없다고 생각된다.


 그래도 대충이라도 말을 해볼까?

by 염맨 | 2010/06/07 19:00 | 알 수 없는 이야기 | 트랙백 | 덧글(2)

EE!!!!


 근데 사실 아직 DD9은 안 봤다.

by 염맨 | 2010/05/28 16:16 | 트랙백 | 덧글(2)

쉽게 할 수 있는 말


 너무 쉽게 할 수 있는 말은 한 번 의심해보는 게 좋겠다. 구로사와 아키라 영화가 미국적이라거나, 박찬욱 영화에서는 먹물 냄새밖에 안 난다거나, 쿠엔틴 타란티노가 장르를 가지고 논다거나, 류승완에 대해 같은 말을 하거나, 이창동은 역시 시인이라거나, 염맨은 역시 잘 생겼다거나, 뭐 그런 거. 하지만 쉽게 할 수 있는 말이라고 해서 꼭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지금 쓴 것 중에도 맞는 말 있음.

by 염맨 | 2010/05/25 10:54 | 알 수 없는 이야기 | 트랙백 | 덧글(4)

로이드 맥마스터 부졸드, 『보르 게임』


 "멈출 수 없는 마일즈의 사기본능! 우주는 새로운 전쟁에 휘말린다!" 


 (해설) 로이스 맥마스터 부졸드는 마일즈 보르코시건이라는, 신체적인 장애와 비상한 두뇌를 가진 주인공을 두고 일련의 스페이스 오페라(우주 활극)을 집필하고 있는 SF 소설가다. 위의 문구는 그의 작품 『보르 게임』에 내가 임의로 붙인 광고 문구, 그것도 촌스러운 영화홍보문구의 말투를 흉내내서 쓴 것이다. 책의 내용을 사실적으로 전하는 데는 부적합하지만 이 책에 어떤 재미를 느낄 수 있는지 예고하는 용도로는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대략적으로 말해, 주인공 마일즈는 이 '보르 게임'이 다룬 이야기보다 더 앞선 시대의 이야기를 그린 『마일즈의 전쟁』에서, 열 명도 안 타는 작은 우주선 하나를 타고 뜻하지 않게 전장의 한 가운데로 들어가지만 단지 세치 혀를 교묘히 놀린 것으로 몇 달 뒤에는 그 전쟁의 승전세력의 수장이 되어 있다. 위대한지는 불분명하지만 개성만큼은 분명한 스페이스 오페라.




 *그런데 스페이스 오페라란 말을 쓰지 않고 그냥 우주활극이란 번역어를 쓰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by 염맨 | 2010/05/06 09:55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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